맨해튼 프로젝트
-at 로스앨러모스(연구소)
-페르미, 파인만, 폰 노이만 등 중요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100명 넘게 모였다
-급조된 건물, 열악한 환경에서도 히틀러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에는, 원자폭탄이 인류를 파멸로 이끌지도
원자폭탄을 상대보다 먼저 개발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 사이에 있어서 미국과 독일의 과학자들에 대한 억압과 협박, 음모는 국가를 위한다는 말 한 마디에 무시되었고, 서로 양 국가의 스파이 활동과 과학 기술 발전 억압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분명 이것이 최초의 과학에 의한 전쟁(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가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1953년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창하면서 미국의 원자력기술이 세계에 공개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원자력발전 등에 관한 연구개발이 시작되었다.
1956년에는 영국의 콜더 홀 원자력발전
윤리적 부당성과 잔악성에 분노했다면 미국 정부는 본토에 가해진 최초이자 성공적인 공격에 수치심을 느끼고 혹은 복수심을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미국의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추앙받는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그간 미국정부가 주도했던 수많은 국가주도 테러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며
과학자 입에서 새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원폭이 종전 직후 냉전 전개를 염두에 둔 작전, 즉 소련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는 설까지 등장했다. 워싱턴이 ‘입이 거친’ 오펜하이머를 놔둘 리 없었다. 1954년 공산당 동조 혐의와 수소폭탄 제조 반대 발언을 빌미 삼아 법무부와 반미활동조사위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를 주제로 선택하였다.
우리는 이 여성과학자의 삶에서 인문학적인 가치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따라서 리제 마이트너의 훌륭한 과학적 업적 보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그녀의 태도에 더 관심을 두었다. 리제 마이트너는 연구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고 권위에 욕심이 없던 순수한
원자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원자핵이 둘로 갈라지면서 2~3개의 중성자가 방출되는 현상을 발견
마이트너가 '핵분열'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서구에 알려지게 됨
이 발견이 계기가 되어 각국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남
-맨해튼 프로젝트-
본격적인 원자탄 개발이 시작
히틀러
과학 및 공학이 다른 목적을 갖기 아니하고 과학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을 의미함
과학 혹은 공학을 자연과 인류를 황폐하게 만드는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
(비관적 공학관의 오류)
문제는 공학을 나쁜 의도로 사용하는 것임 ex) 대량 살상무기(원자폭탄등)의 개발
모든 사물은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간의 삶에 유익을 주고 있으며 그 경계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잘못된 전통의 과학주의나 지나친 신비주의 때문이다. 21세기 과학과 종교는 그 각자가 있어야 할 곳에 각각 있는 것이다. 다음에서는 역사적으로 갈등과 반목 협력과 조화의 길을 걸었던 과학과
폭탄을 비밀리에 제조하여 우리나라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리겠다는 의지를 다지곤 하였다. 과학기술자로서의 관점에서 그는 뉴턴과 아인슈타인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진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인도적 도덕적 관점에서 인간을 대량 학살하는데 핵폭탄을 개발하고 이바지한 부분은 1차 세계